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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리 시인의 글나라 블로그]여행 여유가 있는 곳

무명_무소유 2008. 4. 12. 15:11

문득 어딘가로 가고 싶은 때는  떠나지 못해  인터넷을 이리저리 헤메곤 합니다.

우연히 들른 이곳,  

 

이소리 시인의 글나라 블로그

 

http://blog.naver.com/lsr21?Redirect=Log&logNo=40001757096

 

 

 

재물과 권력 잡으려면 솥바위를 품에 안아라

<그 품에 안기고 싶다 94> 남강변에 세 명의 재벌 낳은 '의령 솥바위'
  이종찬(ls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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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빛 물결 위에 마치 커다란 자라처럼 헤엄치고 있는 솥바위
ⓒ 이종찬

컴퓨터 휴지통은 비우기를 하면
금새 티 한 점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다
근데 사람의 마음은 아무리 비우려 해도
잘 비워지지 않고 비우더라도 가슴에 맺힌다
하긴 컴퓨터를 만든 이가 사람이니
어찌 이 세상을 비울 수 있겠는가
매일 비우기를 거듭하는 저 남강도
솥바위로 뒹굴며 다시 강물을 채우는 것을
텅 빈 것 같은 아스라한 하늘에도
어느새 구름 한 점 고봉밥처럼 떠도는 것을
-이소리, '솥바위를 바라보며' 모두


▲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더불어 일찌기 뱃길이 열렸던 남강
ⓒ 이종찬

▲ 남강은 의령 화정면과 의령읍, 용덕면, 정곡면, 지정면을 따라 굽이쳐 흐른다
ⓒ 이종찬

부자마을 많고 인심까지 넉넉한 의령에서 살고파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더불어 일찌기 뱃길이 열렸던 남강. 의령군을 꼭지점으로 삼아 남서쪽으로는 진주시, 남동쪽으로는 함안군을 끼고 흐르는 남강. 예로부터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게 의령의 논밭을 기름지게 일궈온 남강은 의령 화정면과 의령읍, 용덕면, 정곡면, 지정면을 따라 굽이쳐 흐른다.

의령의 역사와 의령사람들의 삶의 속내를 속속들이 담고 오늘도 고요히 흐르고 있는 남강. 남강은 임진왜란(1592~1598) 때 왜군이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었다. 의령에서 태어난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가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남강 곳곳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남강변은 예로부터 선인들이 나룻배를 타고 오가던 나루터가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강변에는 나룻터의 흔적은 간판으로만 남아 있고, 기름진 땅과 풍부한 물이 흐르는 들녘에는 비닐하우스가 넘실댄다. 그 비닐하우스 속에서는 일년 내내 수박과 딸기, 호박, 메론 등이 탐스럽게 영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의령에는 알부자가 꽤 많고 인심 또한 넉넉하다. 하지만 의령사람들 대부분은 이 모든 물질적 풍요가 남강 정암진 나루터에 우뚝 서 있는 솥바위의 정기를 받아서 그렇다고 여기고 있다. 대체 솥바위가 무엇이기에 이 지역사람들이 그토록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 여기고 있는 것일까.

▲ 정암루는 곽재우 장군이 전투를 지휘하던 곳이다
ⓒ 이종찬

▲ 정암루에 올라 초록빛으로 흐르는 남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신도 몰래 시와 노래가 저절로 나올 것만 같다
ⓒ 이종찬

오늘도 연초록빛 강물 촐싹이는 정암루와 솥바위

남해 고속도로 군북 나들목을 지나 10분쯤 의령쪽으로 달려가면 충의의 고장 의령의 관문이 보인다. 그 의령관문 앞을 가로지르며 철교와 기암절벽 아래 윤슬을 반짝반짝 빛내며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 바로 의령의 젖줄 남강이다. 남강은 진주에서 바라보면 진주를 꼭지점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령에서 바라보면 의령을 꼭지점으로 흐르는 강이다.

지난 달 6일(금) 오후 3시. 여행작가 김정수(36)와 함께 찾았던 정암루와 솥바위. 정암루(鼎巖樓)와 솥바위(鼎巖)는 의령관문 바로 앞을 가로지르는 남강의 옛 나루터 정암진(鼎巖津)에 우뚝 서 있다. 하이얀 벚꽃과 연분홍빛 복사꽃에 둘러쌓인 정암루와 그 아래 연초록빛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솥바위는 그대로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곳은 곽재우 장군이 남강을 건너 진주와 전라도로 나아가려던 왜군을 모조리 수장시킨 역사의 현장이다. 곽재우 장군은 왜군이 함안을 지나 의령을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 나루터 곳곳에 의병을 숨겨놓고 있다가 왜군이 강 가운데 들어왔을 때 전투를 시작했다. 그때 왜장 혜경이 이끄는 수만의 왜적은 꼼짝없이 남강 속에 그대로 수장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남강을 굽어보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 맛배지붕의 이 누각(정암루)은 곽재우 장군이 전투를 지휘하던 곳이다. 지금 정암루에 올라 초록빛으로 흐르는 남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신도 몰래 시와 노래가 저절로 나올 것만 같다. 풍경은 이처럼 그 시대와 처한 현실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진다.

▲ 이 솥바위는 물 속에서 바라보면 마치 솥단지의 다리처럼 발이 세 개 달려 있다
ⓒ 이종찬

▲ 이 바위를 꼭지점으로 사방 20리(8㎞) 안에 큰 부자가 나온다 했다
ⓒ 이종찬

의령사람들의 부와 권력의 상징 '솥바위'

정암루 아래 나루터 곁에는 초록빛 물결 위에 마치 커다란 자라처럼 헤엄치고 있는 커다란 기암괴석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고 솥두껑처럼 생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그네가 보기엔 솥두껑이 아니라 천 년 묵은 자라가 목을 한껏 움츠린 채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는 듯하다. 이 바위가 바로 솥바위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이 솥바위는 물 속에서 바라보면 마치 솥단지의 다리처럼 발이 세 개 달려 있다. 솥에 무슨 다리가 있냐구? 이는 잘 모르는 말이다. 옛날 우리나라 가마솥은 다리가 없는 가마솥도 더러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대부분의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는 다리가 세 개 달려 있었다.

솥바위에 얽힌 재물과 벼슬에 얽힌 풍수 이야기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예로부터 이 바위를 꼭지점으로 사방 20리(8㎞) 안에 큰 부자가 나온다 했다. 그리고 물 속에 잠겨 있는 이 솥바위의 세 발은 곧 삼공(삼정승)을 뜻하기 때문에 이 일대에서 정승에 버금가는 세 명의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 했다.

솥을 뜻하는 '정'(鼎)이란 글씨를 살펴보자. 솥 '정'(鼎)은 세 개의 발이 달린 솥을 뜻한다. 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밥을 지을 때 꼭 필요한 살림살이의 하나이다. 더불어 늘상 밥을 짓는 솥은 곧 재물을 뜻한다. 그렇다면 재물을 얹고 있는 솥의 세 발은 무엇을 상징하겠는가. 권력 아니겠는가. 물론 지금이야 세상이 밝아져 권력과 재물이 어느 정도 따로 놀긴 하지만.

▲ 물 속에 잠겨 있는 이 솥바위의 세 발은 곧 삼공(삼정승)을 뜻하기 때문에 이 일대에서 정승에 버금가는 세 명의 훌륭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 했다
ⓒ 이종찬

▲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곳이 이 솥바위에서 8㎞ 떨어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다
ⓒ 이종찬

솥바위 앞에 그림자 드리우는 자굴산

그래서일까.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곳이 이 솥바위에서 8㎞ 떨어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다. LG그룹 고 구인회 회장도 이곳에서 7㎞ 떨어진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효성그룹 고 조홍제 회장도 5㎞ 떨어진 함안군 군북면이 고향이다. 이 솥바위에 얽힌 풍수 이야기가 뭔가 그럴 듯해 보이지 않은가.

이는 안내자료도 뒷받침한다. 자료에 따르면 의령은 동남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서북쪽으로는 자굴산이 뻗어 있는 배산임수(집 뒤에 산이나 언덕이 있고, 앞에는 강이나 개울 등 물이 있는 곳)의 길지다. 특히 자굴산 끝자락은 솥바위 바로 앞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이곳 풍수가 이러하니 어찌 솥바위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가 떠돌지 않겠는가.

어디 그뿐이랴. 세 명의 재벌이 태어나기 전에도 경상도 최고의 만석꾼이었던 이부자댁이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더불어 이 지역의 이름 또한 정암루, 정암들, 정암교, 정암제, 정암마을 등, 온통 '정암'(鼎巖)이란 글씨로 수두룩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솥바위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령이 고향인 김정수 기자는 "지금도 의령 정암과 함안 정암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창원을 비롯한 가까운 도시에 집 한두 채씩 가지고 있는 알부자"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1924년 정암둑이 만들어지면서 해마다 일어나는 홍수에 따른 걱정이 사라지게 됐다"며, "의령은 일년 내내 따뜻한 날씨로 인해 참외, 수박, 수박, 벼 등 1년4작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 기암절벽 아래 윤슬을 반짝반짝 빛내며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 바로 의령의 젖줄 남강이다
ⓒ 이종찬

솥바위 바라보며 빈부 양극화 틈새 메우는 꿈을

의령의 관문처럼 우뚝 서 있는 정암루와 솥바위. 이곳 마을주민들 일부는 지금도 섣달 그믐날이면 솥바위에 금줄을 친다. 그리고 동신제, 용왕제 등을 올린다. 게다가 요즈음 이곳(화정면 장박~정암진 구간)에는 의병전적지 뗏목 탐사를 이벤트화하여 호국정신과 체력을 다지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곽재우 장군의 혼이 깃든 정암루와 의령 사람들의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솥바위. 그래. 이번 주말에는 강물에 톡톡 터지는 윤슬을 쌀로 삼아 달디단 밥을 짓고 있는 듯한 솥바위를 바라보며 빈부 양극화의 틈새를 메우는 꿈을 꾸어보자. 앞으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런 날들이 쭈욱 이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가는 길/ 서울-대전, 통영 고속도로-진주-마산, 부산쪽 남해고속도로-함안 군북 나들목-의령-남강-의령 관문-정암루, 솥바위